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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념일 안챙기는 군화와 싸우고 헤어진 곰신 추천 0  
작성자 이수지 작성일 2013-04-02 17:44:53 조회수 921
   
 

곰신생활매뉴얼 코너를 통해 몇 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몇몇 곰신들은 군대를 '군사교육 기숙학원'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연을 보낸 곰신 역시 군대의 '특수성'까지는 잘 이해하고 있으나, 군대에 계급이 있으며 '이등병'은 그 중 가장 낮은 계급이라는 걸 실감하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직장에 들어가 고된 신입사원 시절을 보내는 것이나, 기숙학원에 등록해 자유롭지 않은 외출 때문에 곤란은 겪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먼저, 군화와 같은 생활관을 쓰는 사람들은 '같은 반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이등병'인 군화보다 계급이 높은 고참들이다. 그 고참들이 '학교 선배'나 '직장 상사'정도일 거라고 가볍게 상상하진 말길 권한다. 학교 선배는 보기 싫으면 안 볼 수 있고, 직장 상사와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연을 끊을 수 있다. 하지만 군대 고참과는 24시간 함께 생활하며, 고참이 싫다고 부대를 옮겨 달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연을 보낸 곰신이 군대의 이러한 '개념'을 명확하게 잡아두었더라면,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아직 잘 사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곰신은 군대를 '군사교육 기숙학원'정도로 생각했고,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잘못된 개념이 어떻게 이별을 불러왔는지 함께 살펴보자.  



1. 자대배치 2주차인 군화.

자대에 갔다고 바로 모든 걸 다 섭렵한 군인이 되는 건 아니다. 곰신의 군화는 자대배치 2주차라고 했는데, 자대배치 2주차라면 부대 내에서는 유치원생으로 여겨진다. 아직 부대의 시설도 다 파악하지 못했고, 함께 생활하는 전우들의 이름도 다 외우지 못했으며, 자대생활에 대해 이제 막 배워가는 '아이' 정도로 생각한단 얘기다. 


때문에, 부대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대개 고참 중 한 명을 '도우미 병사'로 지정해 거의 모든 생활을 같이 하며 가르쳐 준다. 전화를 걸러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갈 때 함께 가며, 경우에 따라 화장실을 갈 때 함께 가기도 한다. 또한 '신병'인 군화의 일거수일투족엔 생활관 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부대 내 사람들 역시 군화를 파악해야 하는 까닭에 분대장 면담, 소대장 면담, 행정보급관 면담, 중대장 면담, 대대장 면담 등이 진행되며 다른 고참들 역시 군화와 대화를 하며 하나 둘 알아가고, 또 알려준다. 


"군화가 자대배치 받은 지 2주차 되는 일요일에 면회를 갔어요.

그 날이 제 생일이었는데, 생일선물은커녕 짧은 편지조차 없더군요.

기분이 상했지만 ‘바쁘면 그럴 수 있지’라며 그냥 넘겼어요."


자대배치 2주차의 생활은 '바쁜 것'정도로 가볍게 설명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과 때문에 바쁘기만 한 거라면 잠시 화장실 간다는 핑계를 대고 변기에 앉아서라도 짧은 편지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자대배치 2주차의 생활은, 서울행 기차인 줄 알고 탔는데 부산에 내렸을 때와 같은 '멘붕' 상태와 비슷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근 2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점호(조회)를 위해 연병장(운동장)에 나가보면 죄다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만 서 있는 데서 오는 중압감. 사회와는 다른 말투를 써야 하며 서둘러 부대 내 사람들의 이름과 서열, 군가나 규율 등을 외워야 한다는 부담감.


그런 남자친구에게 '생일선물과 편지'를 기대하는 건 물에 빠진 사람에게 노래 불러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아래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군대'에 대한 건 '여자'말고 '남자'에게 묻길 권한다. 군대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남자친구의 상황을 물으니,


"정말 마음이 있었다면, 선물은 몰라도 짧은 편지는 썼겠지.

나라면 잠 잘 시간을 쪼개서라도 축하 카드를 썼을 것 같은데."


따위의 황당한 답변만 듣게 되는 거다. 자대배치 2주차인 이등병이, 잠 잘 시간을 아무리 쪼개 봐야 '축하카드 쓸 시간'은 나오지 않는 다는 걸,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2. 부대로 전화하는 곰신.

생일 선물도, 짧은 편지도 준비하지 않은 군화에게 곰신은 서운했다. 그래서 군화에게 전화가 오면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받고, 매일 쓰던 편지도 쓰지 않았다. 곰신 나름의 '복수'를 한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와 맞물려 군화의 연락도 줄어들었다. 통화를 하다말고 가봐야 한다면서 끊기도 하고, 군화가 전화를 걸지 않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다. 


자대배치 4주차가 지난 이후의 생활을, 역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조금 공포스럽게 표현하자면, 


"이제 봐 주는 건 없다."


의 상황이 시작된다. 그간의 실수들이야 '아이'가 저지를 수 있는 것들로 여겨졌지만, 4주차 이후의 행동에 대해선 본인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진짜 군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훗날 곰신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군화가 한 말들로 미뤄보면, 이 시기에 군화는 동기들이 토닥여 줘야 할 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다. 아직 개념도 잘 서지 않은 상황에서 훈련이 잡히고 부대 내 상황도 발생하는 등 여러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군대를 '군사교육 기숙학원' 정도로 생각한 곰신은, 서운한 감정과 분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부대로 전화를 건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다른 곰신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그 친구는 군화 부대로 전화를 걸어 통화해 보라고 권했다. 자신은 종종 부대로 전화를 걸어 남자친구와 통화를 한다면서 말이다. 


추측하건대, 아마 그 친구의 남자친구는 당직 분대장을 서는 날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라고 했던 것 같다. 회사에 비유하자면 교환실에서 근무를 하는 직원인 까닭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도 자신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연을 보낸 곰신의 군화는 훈련준비에 여념이 없는 보통의 이등병이었다. 다시 한 번 회사에 비유하자면, 직장의 상사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상황의 일반 직원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업무를 보고 있던 중 곰신이 부대로 전화를 걸었고, 곰신은 자신이 할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 뒤 남자친구가 고참들에게 깨졌을 걸 생각하면 내가 다 아찔하다. 


전화를 건 날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없자, 곰신은 며칠 뒤 다시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곰신은 감정이 치솟아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고 하는데, 하아, 그건 그냥 군화를 가시밭길로 떠민 것과 같은 짓이다. 군화는 아무리 감정이 치솟아도 눈 크게 뜨고 다 봐야 하는 '이등병'이라는 걸, 곰신은 왜 몰랐을까. 부대에 전화하는 건, 학교나 직장 등에 전화하는 것과는 역시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군화는 다음 날, 대체 왜 그러는 거냐면서 전화 때문에 자신이 엄청 깨졌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런 군화를 두고 곰신은 생일 운운하며 서운한 부분들을 전부 털어 놓았다. 군화는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하는 소리냐며, 여자친구까지 자신을 힘들게 하니 더는 연애를 못하겠다고 이별통보를 했다. 이후 둘은 지금까지 연락을 안 하며 지내고 있다. 



3. 안타까운 조급증과 황당한 조언

사연을 보낸 곰신은 '이렇게 기다리다가 군화 마음이 변해 이별하게 되면 어쩌나'라는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사회에 있을 때처럼 대해주지 않는 군화에게 서운한 점이 많아졌고, 군화의 행동이 조금만 달라져도 마음이 식었다는 증거로 채택하려 했다. 


위의 이야기들로 '군대'에 대해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혔다면, 이제 곰신은 자신이 힘들어하는 군화에게 투정부리고 징징거렸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생각한다. 


"남자친구와의 문제는 생일, 기념인, 연락에 관한 거예요."


라는 말이, 이제는 뒤통수 긁어야 할 정도로 부끄러운 얘기라는 걸 알 것이다. 


군대에 대해 아는 거라곤 곰신과 별반 차이 없는 '아는 언니'나 '곰신인 친구'에게 듣고 실행에 옮긴 일이 끔찍한 일이었다는 것도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대배치 2주차인 이등병에게 생일선물과 편지를 기대한다거나 부대에 전화해 군화를 바꿔달라고 하는 일이, 안 그래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군화를 벼랑 끝으로 미는 행위였다는 것을. 


조급증은 그 염려하는 대상의 촉매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여유롭게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도, '만약 그러면 어쩌지?'라고 조급해하며 작은 맹세나 약속이라도 받으려 하다가 망치는 경우가 많다. 연애 하고 있는 커플들에게 내가 늘 하는 얘기를 소개해 주고 싶다. 


"사랑은 말로 설명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어서 사랑한단 말을 하라며 상대를 아프게 찔러대지 말고, 그가 자연스레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줘 보자. 상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스스로를 돌볼 여력마저 없을 땐, 다 미뤄두고 그저 그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마음 다해 도와가며 말이다.



사연을 보낸 곰신은, 메일 마지막 부분에


"그럼 그때 저에게 왜 기다려 달라고 했었는지, 

그땐 정말 절 사랑해서 그랬던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만약 마음이 변한 거라면, 제가 다시 기다리면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지도…."


라는 질문을 적어두었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한 것인데, 그것마저 믿지 못하고 정말 사랑했냐고 상대에게 추궁하듯 묻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바뀐 마음을 돌리는 것 역시 둘이 노력해서 함께 해야 하는 것이지, 상대보고 어떻게 할 거냐고 열심히 물어봐야 소용없다. 


확답을 받거나 약속을 받으려는 태도는 접어두고 함께 노력하길 권한다. 전화통화가 어렵다면 편지로 적어 보낼 수 있지 않은가. 그 날 이후로 바뀐 곰신의 생각들과, 힘든 시기에 투정만 부렸던 행동에 대한 사과를 편지에 적어 보내길 권한다. 차분히 써 내려간 곰신의 진심에, 분명 군화도 진심으로 화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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